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문단 편집) === [[성 이슈트반 왕관령|트란스라이타니아]] === 오스트리아 제국과 달리 헝가리 왕국에서는 상황이 크게 달랐다. 헝가리 의회는 크게 대타협 지지파인 자유당과 대타협 반대파인 독립당[* 정식 명칭은 독립과 48년당. ] 두 세력으로 나뉘었는데 총선에서 헝가리인들은 독립당을 주로 지지했으며, 소수민족들은 주로 자유당을 지지했다. 소수민족들의 민족주의 성향 정당들 역시 존재했지만, 이들은 1~2석 정도로 큰 힘이 없었다. 헝가리에서는 보통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아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매우 적었는데, 상당수의 헝가리 대의원들은 3자리 수, 또는 4자리 수에 불과한 득표로 당선되었으며, 1910년 마지막 총선 기준 전체 헝가리 인구 1800만 명 중에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110만 명 정도에 불과했고 이는 전체 인구의 6.4%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 제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27%가 투표권을 갖고 있었다.] 이는 보통 선거가 도입될 경우 헝가리인들의 몰표로 총선에서 패배가 확실한 자유당의 반대 때문이었는데 보통 선거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자유당의 필사적인 저지로 끝내 보통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타협 지지파인 자유당은 왕국이 존재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기를 집권 여당으로 존재했다. 독립당은 1906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집권했지만, 이들 역시 대타협을 파기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독립당 정부는 1909년 헝가리 국립 은행 설립 문제로 분열해 무너졌고, 총선 참패 후 자진해산했던 자유당 세력이 국민노동당을 창당하여 1910년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을 먹는 대승을 거두면서 정권을 다시 되찾았다. 또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는 달리 민족 억압책을 폈기에, 오스트리아 같은 사상적 다양성이 없었다. 헝가리의 강압적인 마자르화 정책으로 헝가리 내의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민족 정체성의 붕괴를 걱정해야 했으며, 그 중 슬로바키아인은 체코인과 연대해 헝가리에서 독립하려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